'포스트모더니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7/05/10 스튜어트 홀 - 그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2. 2007/03/16 보편성에 대하여
  3. 2007/02/01 과학은 정말 객관적, 합리적인 것인가

스튜어트 홀 - 그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스튜어트 홀 - 그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 위치

누군가를 위치 짓는다는 것(positioning)은 하나의 정치적 행위이다. 그의 위치를 보고 그와 연대할 것인지, 아니면 결별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거리를 둘 것인지를 파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에 자신의 위치를 결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의 사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곧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은 적극적인 정치행위가 될 수 있다.

홀은 그 당시의 다양한 담론들을 이야기함으로서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어떠한 것과 거리를 두고 있으며, 어떠한 것을 받아들였으며,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 모더니즘과 거리두기

홀은 주로 맑스주의를 통해서 모더니즘을 공격한다. 홀은 맑스주의를 받아들이는 듯이 보이지만 동시에 맑스주의의 많은 부분들을 비판한다. 그는 맑스주의를 경제 환원론적으로 해석하려는 전통적 맑스주의자들의 생각을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하나의 고정된 관점을 가지는 행위를 비판한다. 모든 사회 문제가 경제적 행위와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는 관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는 사회문제는 단순히 생산양식하고만 연결되어 있지 않고, 사회를 경제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중층적인 사회지배체제로 파악해야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하나’의 구성된 관점을 갖는 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비판하는 것이다.


■ 포스트모더니즘과 거리두기

홀은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만들어 놓은 담론의 세계에는 이데올로기, 실천등의 행위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푸코를 이야기하면서 권력의 구조만을 이야기했지 그 안에서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표면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드리야르의 생각에 대해, 언어 속에 이데올로기가 들어갈 공간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즉, 기존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실천을 위해 담보되어야 할 ‘이데올로기, 의미작용, 재현’을 폐기해 버림으로서 실천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간극에서

홀은 모더니즘과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과 거리를 둔다. 이는 기존의 모더니즘에도, 기존의 포스트모더니즘도 아닌 실상 제3의 영역을 만들어 가려는 과정이다. 모더니즘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이어지는 선의 중간부분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모더니즘도, 기존의 포스트모더니즘도 아닌 영역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지만, 동시에 그 둘의 가능성을 받아들인다.


■ 접합이론

홀은 자신의 중층적 지배체계를 이야기하며, 접합이라는 재구성한 용어를 이야기한다. 접합이라는 것은 어떻게 여러 담론 혹은 이데올로기들이 서로 부딪쳐 세력을 만들어 내고, 중요한 이슈로 자리 잡게 되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용어이다. 즉, 중층적 사회구조 내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을 때, 그것들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어떠한 것이 주요하게 작용하는지는 서로가 접합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홀에게 있어 실천을 위해 무언가를 세력화하기 위해서도, 이데올로기의 형성에 있어서도 기존의 포스트모더니즘들이 설명하지 못했던 ‘실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접합’이라는 용어는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 이데올로기, 담론, 그리고 물질

홀은 스스로 형성된 담론, 이데올로기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물질적인 것들과 연관을 맺는지에 대해서 더욱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물음인데, 담론이나 이데올로기들이 현실의 물질과 관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천 없는 담론,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을 물질로 이야기할 수 있는지 - 맑스의 경우에는 ‘생산양식’ - 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와 연관을 맺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는 ‘실천’, '이데올로기‘ 등 그가 강조하고자 했던 개념들에 대해서 전혀 담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비판

홀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 했다. 이것은 양 부분에 대한 동의와 비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아직 채워지지 않은 부분들을 ‘접합’이라는 용어로 메우려고 한다.

이는 동시에 그에게 모더니즘의 특징을 가지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가지지도 못하는 낭떠러지로 그를 안내한다. 그는 중층적 지배체제를 이야기하며 역사적으로 구성된 다양한 요소들로 결정되는 이데올로기의 국면, 실천 등을 이야기한다.

그는 다양한 요소들이 역사적으로 뒤섞이며 이루어 내는 이데올로기의 국면은 변화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그때, 그때 만들어 지는 국면에 대한 실천만이 담보될 뿐,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청사진을 그려낼 만한 역량은 갖추어 지지 않는다. ‘혁명이론없는 혁명운동은 불가능하다.’라는 레닌의 말처럼 그의 생각은 그때, 그때 구성되는 이데올로기, 실천에 대해서 설명할 수는 있지만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낼 능력은 없다. 이는 맑스가 그려내고 있는 청사진(모더니즘)의 모습도 그려낼 수 없으며,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체된 사회의 모습(포스트모더니즘)을 그려낼 수도 없다.

‘접합’이라는 용어는 그것이 선행적으로 구성될지, 후행적으로 구성될지 역시 말해주지 못한다. 역사의 다양한 국면 속에서 ‘접합’이라는 용어는 선행적으로 구성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기존의 실천에 대한 해석으로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낳는다. ‘접합’은 운동을 만들어 내기 보다는 운동을 해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 당신에게 있어서의 홀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은 곧 자기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말해주는 행위이다. 21세기의 홀은 당신에게 어디에 서 있는 것인가. 그것은 아마 자신이 서 있는 위치마다 다르지 않을까.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서로의 위치에 대해서 논하기 시작한다면 변화는 그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2007/05/10 00:36 2007/05/1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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