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국민의 축제라고 이야기되는 월드컵도 어느새 막을 내려갑니다.
이미 16강 진출이 무산된 한국(방송사에서는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더군요.)은
벌써 그 열기가 식을 때로 식어가고 있습니다.
대학에 있다보니 남들보다 많은 축제들을 경험합니다.
5월에 열리는 대동제에서부터,
6월의 월드컵,
그리고 앞으로 있을 연고제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축제가 무엇일까요?
모두가 즐겁게 놀 수 있으면 축제겠지요?
그렇습니다. 모두가 함께 즐겁게 놀 수 있다면 그것은 축제겠지요.
그러나 모두가 함께 즐겁게 놀 수 없다면 그것은 축제일까요?
국민의 축제라고 불리우는 월드컵은,
국민이라고 일컬여지는 사람들의 축제였습니다.
대학 5월의 대동제는
대학생, 그들만의 축제였겠지요.
밤새 소음에 시달렸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축제가 아니라 하룻밤의 성가신 시끄러움에 불과했을테니 말이죠.
이번 월드컵, 많은 비판이 존재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지금 월드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말 없나요.'
' 월드컵보러 집나간 정치적 이성을 찾습니다.'
'나의 열정을 이용하려는 너의 월드컵에 반대한다'
이 세가지 문구는 이번 월드컵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만든 스티커의 문구들이었습니다.
또한 지난번 헌번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이 난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안마업권'에 대해서 6월은 정말 시각장애인들에게 있어서는 절박한 한달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선 이번 '국민'의 축제라고 이야기되던 월드컵에 '국민'이 아니였겠죠.
우선은 '국민'이 무엇이냐,
월드컵이 진정 축제였느냐 라는 질문은 뒤로 미룹시다.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축제는 무엇이며,
축제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축제'란 무엇일까요?
우선 가장 먼저할 수 있는 '사전적 의미'부터 찾아보도록 할까요?
축제란
1. 축하하며, 제사를 지냄.
2. 경축하여 벌이는 큰 잔치나 행사를 이르는 말.
이라고 나와있네요.
첫번째 사전적 의미는 매우 흥미롭네요. 제사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이것은 아마 한국의 특수한 문화에 기인한 하나의 문화적 의미라고 보아도 될 듯 합니다.
우리가 자주 쓰고 있는 축제라는 말은 보통 두번째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서 - 먼가 박제화되어 있는 듯한 말들이니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축제'의 이미지를 떠올려봅시다.
우선 제가 생각하는 '축제'란 하나의 해방의 시공간입니다.
일상의 흐름에서,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난 하나의 시공간이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기존의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행위가 벌어지는 시간들, 그리고 공간들이라는 것이죠.
학교의 수업과 반복되는 일련의 행위들을 벗어난 것이 바로 대학축제가 되듯이,
직장생활,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번 월드컵이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축제가
자신들의 존재, 혹은 자신들에 관련된 중요한 사안들을 지워나가는
- 월드컵 시기에 벌어졌던 수많은 가리움 : 시각장애인, 한미FTA, 그리고 평택까지. -
하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비춰졌겠지요.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이미 사회란 사람들끼리 여러가지 조건들로, 환경들로 얽혀 있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월드컵을 즐기고 있는 사이에,
제3세계의 어린이들은 여전히 10시간이 넘게 축구공을 꿰매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렇다면,
지금 축제들이 여러가지 한계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축제는 어떠한 모습들이어야 할까요?
축제란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이자 공간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모두가 즐겨야 된다는 점이 포인트이겠네요.
그러나 역시 A라는 사람이 즐거워 하는 것과, B라는 사람이 즐거워 하는 것과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때론 동일할 수도 있겠지요.
지금까지의 축제가 하나의 동일성을 추구해 가는 시공간이라고 한다면,
(월드컵에서 똑같은 티, 똑같은 노래가 불리워진다면,
대학의 축제가 언제나 똑같은 술판이고, 똑같은 행위들의 반복이라면,
축제에서 똑같은 응원, 똑같은 동작이 행하여 진다면)
그것은 하나의 동일성을 추구해 가는 행위입니다.
축제란 나와 너가 같다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차이와 너의 차이가 공존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드는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기준으로, 똑같은 행위로 가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어떻게 서로를 멋지게 드러낼 것인가를 지향하는 것이 축제입니다.
나에게는 축제인 것이, 너에게는 축제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똑같은 것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떠들고 즐길테니까, 너도 똑같이 떠들고 즐겨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안그러면 가만히 침묵을 강요하든가 말이죠.
따라서 축제란 어떻게 함께 즐길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해야 하는
'정치적 공간'입니다.
축제가 '탈정치화'의 공간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말입니다.
그렇다면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축제라면, 무엇이 차이일까요?
2002년의 모습과, 2006년의 모습을 되돌아 봅시다.
2002년에는 똑같은 티, 똑같은 노래들이 불리웠던 반면에,
2006년에는 다양한 티, 다양한 노래들이 불리워 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보고 다양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2002년에 비해서 2006년이 차이가 두드러진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한가지를 더 이야기해도 좋을 듯 하군요.
그것은 바로 앞에서 이야기했었던 '해방'입니다.
2002년에 비해서 2006년도의 월드컵은 무언가 다양해 졌지만,
그것은 이미 만들어진 '다양성'이었습니다.
오히려 2002년이 훨씬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2006년에는 이미 정해진 틀, 정해진 공간에서, 정해진 생각을 가지고
축제라고 불리워지는 공간에 뛰어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2002년의 월드컵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축제가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났을 때'라는 것입니다.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을 벗어났을 때
비로소 차이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만들어진 차이가 아니라, 새롭게 차이를 창출해 가는 행위입니다.
기존의 자본주의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기존의 마초주의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그것이 차이를 만들어 내는 과정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2006년의 축제가 성희롱 공간으로 변질되어 가고
엘프녀, 시청녀들처럼 남성들의 시각만을 담아내는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창조하고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이 점차 없어지고,
시청앞 광장은 자본의 놀이터로, 축제는 하나의 이해타산에 맞춰서 진행되게 됩니다.
여러가지 일상을 짓누르고 있는 거대담론에 대해서,
그 해방구들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축제입니다.
그렇지 않은 축제는
기존의 거대담론의 반복이자,
그것을 좀 더 세련된 방법으로 재탄생 시키며,
좀 더 우리의 일상을 파고드는 하나의 환경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축제는
기존의 동일성을 추구하는 가치관들을 넘어서서,
우리가 우리안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자,
기존의 가치관들을 넘어설 수 있는 흐름들을 갖는 축제입니다.
그러한 것이 일상으로 파고들었을 때, 일상은 곧 축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축제'라고 불리웠던 것에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인지 - 그것이 차이를 드러내면서 - ,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그러한 축제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만의 축제를 넘어서는,
축제가 하나의 단절된 흐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일상을 파고드는 흐름으로서,
자신안의 가능성을 발견해 가는 하나의 실천이자,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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