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정리
'우정의 정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우정의 정리'라고 하면 우정에 대한 내용이겠지 생각하시겠지만,
조금은 다른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정과 관련된 재밌는 내용이라는 것은 맞겠군요.
한 사람이 A라는 사람을 압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A라는 사람을 압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A라는 사람을 압니다.
그렇게 될 경우,
B라는 사람과 C라는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모르지만
A라는 사람을 경유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일 때
A라는 사람은 그 인간관계에서 하나의 중심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다시 어떤 사람들을 만날 때
A라는 사람을 경유해서 만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매우 수평한 관계에서 관계가 맺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선을 그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A라는 사람이 중심에 있고 모든 선들은 A라는 사람에게 그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그림은 한 평면에 놓고 그릴 수 있지만,
또한 A라는 점을 위로 당김으로서 피라미드와 같은 모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해가 잘 안되신다고요?

이렇게 말이죠.
사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중심자가 있다는 것은
하나의 권력구조로서 작용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도식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대학 안의 '학생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과가 되었든, 반이 되었든 그 구성단위의 학생회장들은 대부분 그 안의
구성원들을 두루두루 알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학생회장은 누구나 알게 되겠지요.
그 과나 반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이 그 안의 누군가를 찾기 위해,
보통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바로 '학생회장'이니까 말입니다.
사실 이것은 대학교 내의 학생회라는 조직만이 아니라 많은 곳에서 발견이 됩니다.
그러나 특히 대학교 내의 학생회라는 조직이 이에 가장 잘 들어맞는 모습인 것이지요.
하나의 관계가 어떻게 중심을 만들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정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고민을 해봅시다.
만약 A라는 사람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그 안에서의 중심자가 없어지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중심자가 사라진다면,
그 안에서는 여러가지 선들이 생기게 됩니다.
위의 그림에서는 모든 선들이, 모든 관계들이 A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그어졌지만
A라는 존재가 사라짐으로 인해서 선은 서로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횡단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A라는 곳으로 향하는 방향성이 있었지만,
종점지였던 A가 없어지는 바람에 A로 흐르는 방향성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방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 자신이 횡단하고 싶은 방향을 향해서 선들은 그어지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선들은 서로가 교차하기도 하며 평행하기도 할 것입니다.
교차된 곳은 다시 점들이 생길 것이고,
그 점들은 예전의 A라는 하나의 점이 아니라 다양한 점들이 생기는 것이지요!
바로 다양한 접합점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사회를 단순히 이 두가지 모형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아보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두가지의 것들이 혼용되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전자 - A라는 중심자를 갖는 것 - 으로 많이 치우쳐져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모임을 잡는 사람이 항상 같은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학생회 내에서는 학생회장이,
학회내에서는 학회장이,
친구들 사이에서도 중심적 인물들이 그 역할을 주로 도맡곤 하지요.
그러나 A라는 사람이 입장이 아닌 - 학생회장, 학회장, 중심적 친구등등 -
B나 C라는 인물의 입장에서는 어떠할까요?
그에게 좋은 것은 A라는 사람을 경유하지 않고도 서로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좋을 것입니다.
A를 제외하고도 다른 것을 통해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접합점들은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먼저 A에게 가는 선을 돌려서 다른 방향으로 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는 많은 노력과, 많은 고통이 감수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실패할 경우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 번 그어진 선은 스스로에게
스스로의 선을 그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합니다.
그만큼의 위기를 넘겼으니 비로소 혜택이 돌아온다고 이야기해야 할까요?
당신은 어떠한 선을 그을 수 있습니까?
오늘 저에게 당신과 교차할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저 역시 오늘 새로운 선을 그어나갈테니 말이죠.
어떤 분들은 '우정의 정리'라고 하면 우정에 대한 내용이겠지 생각하시겠지만,
조금은 다른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정과 관련된 재밌는 내용이라는 것은 맞겠군요.
한 사람이 A라는 사람을 압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A라는 사람을 압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A라는 사람을 압니다.
그렇게 될 경우,
B라는 사람과 C라는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모르지만
A라는 사람을 경유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일 때
A라는 사람은 그 인간관계에서 하나의 중심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다시 어떤 사람들을 만날 때
A라는 사람을 경유해서 만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매우 수평한 관계에서 관계가 맺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선을 그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A라는 사람이 중심에 있고 모든 선들은 A라는 사람에게 그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그림은 한 평면에 놓고 그릴 수 있지만,
또한 A라는 점을 위로 당김으로서 피라미드와 같은 모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해가 잘 안되신다고요?

이렇게 말이죠.
사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중심자가 있다는 것은
하나의 권력구조로서 작용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도식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대학 안의 '학생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과가 되었든, 반이 되었든 그 구성단위의 학생회장들은 대부분 그 안의
구성원들을 두루두루 알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학생회장은 누구나 알게 되겠지요.
그 과나 반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이 그 안의 누군가를 찾기 위해,
보통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바로 '학생회장'이니까 말입니다.
사실 이것은 대학교 내의 학생회라는 조직만이 아니라 많은 곳에서 발견이 됩니다.
그러나 특히 대학교 내의 학생회라는 조직이 이에 가장 잘 들어맞는 모습인 것이지요.
하나의 관계가 어떻게 중심을 만들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정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고민을 해봅시다.
만약 A라는 사람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그 안에서의 중심자가 없어지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중심자가 사라진다면,
그 안에서는 여러가지 선들이 생기게 됩니다.
위의 그림에서는 모든 선들이, 모든 관계들이 A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그어졌지만
A라는 존재가 사라짐으로 인해서 선은 서로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횡단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A라는 곳으로 향하는 방향성이 있었지만,
종점지였던 A가 없어지는 바람에 A로 흐르는 방향성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방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 자신이 횡단하고 싶은 방향을 향해서 선들은 그어지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선들은 서로가 교차하기도 하며 평행하기도 할 것입니다.
교차된 곳은 다시 점들이 생길 것이고,
그 점들은 예전의 A라는 하나의 점이 아니라 다양한 점들이 생기는 것이지요!
바로 다양한 접합점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사회를 단순히 이 두가지 모형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아보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두가지의 것들이 혼용되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전자 - A라는 중심자를 갖는 것 - 으로 많이 치우쳐져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모임을 잡는 사람이 항상 같은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학생회 내에서는 학생회장이,
학회내에서는 학회장이,
친구들 사이에서도 중심적 인물들이 그 역할을 주로 도맡곤 하지요.
그러나 A라는 사람이 입장이 아닌 - 학생회장, 학회장, 중심적 친구등등 -
B나 C라는 인물의 입장에서는 어떠할까요?
그에게 좋은 것은 A라는 사람을 경유하지 않고도 서로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좋을 것입니다.
A를 제외하고도 다른 것을 통해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접합점들은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먼저 A에게 가는 선을 돌려서 다른 방향으로 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는 많은 노력과, 많은 고통이 감수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실패할 경우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한 번 그어진 선은 스스로에게
스스로의 선을 그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합니다.
그만큼의 위기를 넘겼으니 비로소 혜택이 돌아온다고 이야기해야 할까요?
당신은 어떠한 선을 그을 수 있습니까?
오늘 저에게 당신과 교차할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저 역시 오늘 새로운 선을 그어나갈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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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제가 요즘 어떤 고민에 빠져있는지 알고 쓰신 글 같네요.
어떤 상황이 찾아오면 그 A라는 점에 대해 싫어도 자꾸 자각하게 되더군요.
때로는 원하지 않는 누군가가 무의식 중 어느새 A가 되어있기도 하고,
관계가 불편해진 두 사람 사이에 제가 A가 되어있기도 하고요 ..
B와 C가 곧장 서로를 만나는 것이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사람관계란 그렇게 수학처럼 간단히 선긋기로 무마되지는 않는가봐요.
어쨌든 언제나 생각하게 해주시는 글, 감사합니다.
저 역시 글은 이렇게 쓰더라도
상황,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 해야할지 사실 헷갈릴때가 많습니다.ㅠ
A라는 중심점에 익숙하게 산지가 어언 저같은 경우 25년,
님의 경우는 몇년인지는 모르겠군요.ㅎㅎ
그렇게 살다가 갑자기 행동패턴을 바꾸는 것 역시
쉽지 않으니까 말이죠.^^
항상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ㅠ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부제를
'만인을 위한 책이면서도 아무에게도 아닌 책'으로 달았듯이,
이 글 역시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읽힐 거 같아요.^^
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맘에들어요 이글.. ^^
ㅎㅎㅎ 맘에 든다니 다행이구나.
앞으로도 계속 맘에 드는 글을 써야될텐데..
저는 그것이 부정적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아요.
반대로, 서로 직접 이어질 수 있는 그런 관계 역시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구요.
음.. 자세한 이야기를 할 만큼 깊은 생각이 있는건 아니지만 말이에요 :)
ㅎㅎㅎ
물론 이 말을 봤던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어떠한 것이 어떠한 것에 우월하다고 나와있지는 않아.
오히려 그러한 것에 대해서 위험을 경고하지.
다만
사회를 사유하는 대부분이
어떠한 중심자를 상정하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는거지.
그리고 중심자들은
대부분 초월적 위치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고,
고정화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위에서 니체의 이야기를 잠시 언급했던 것이고..
그것이
철학자에게 있어서는 플라톤의 '이데아'였고,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이었으며,
혁명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맑스'였으며,
정신분석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쾌락'이었겠지.
ㅎㅎ
이 글이 정말 다양하게 읽힌다는 생각이 드네.
특히 중심자가 없어진 경우에 한해서 말이야.
서구 사상에 너무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경험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하고 있어.
결과적으로는
두가지 중 어느 것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실제로 후자를 통해서 상상하고, 사유하기 시작한 역사가
너무나 짧은거 같아.
시간되면 <노마디즘> 책 읽어보렴.
거기에 좀 자세하게 나오는거 같아.ㅎㅎ
진짜 이글 맘에 들어요-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는 글이군요- 일단은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가능성을 향하는 것이 더 좋겠지요??
ㅎㅎㅎㅎ
이 글이 인기가 많군.
한번 보는데 500원씩 받아야겠어~(농담이고;; )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은,
YES!!!!
이제 시작이니까~ㅎㅎ
어쩌면 우리가 접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실험들, 고민들을 멈추지 않는 이상,
언젠가 우리는 두가지의 길을
우리 맘대로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