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기
요즘 글들을 보면
질 들뢰즈에 관련된 내용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저의 주요한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저에게 가장 자극이 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는 들뢰즈가 이야기했던 리좀, 탈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예전의 글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되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되기'까지 이야기된다면 질 들뢰즈의 기본적인 개념이나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정말로 간략하게나마 짚고 넘어가는 것이 됩니다.
'되기'가 무엇일까요?
'되기'라고 단순히 명사로 써놓으면 이것이 무슨 뜻일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 무엇이 되다'라고 말씀드리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저 아이는 키가 '크다', 혹은 키가 '작다'라고 이야기할 때
그러한 말들은 그 아이의 고정된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그에 비해 '저 아이는 키가 크고 있다' 라는 말은
마찬가지로 그 아이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말이지만 위의 말과는 조금 다른 듯 합니다.
이 말은 하나의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단순히 어떠한 '고정된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되기'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무엇, 무엇이 되다.'라는 것은 단순히 A가 B가 되었다라는 말을 뜻하지 않습니다.
A가 B를 만나서 A'가 될 수도 있고, A''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C가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야기해 봅시다.
어느 한 남성의 '여성-되기'라는 말은 단순히
한 남성의 신체적 구조가 여성의 것과 같아진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도 쓰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되기'에서 찾아내고자 하는 의미는 그러한 것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한 남성의 '여성-되기'는 남성이 신체적 구조가 여성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성처럼 머리를 기르고, 손톱을 기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재창조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다소 어렵게 들리실 것 같아서 다른 예시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사람의 '뱀-되기'를 이야기해 봅시다.
사람이 뱀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혀를 뱀의 혀처럼, 몸의 피부를 뱀의 피부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뱀의 양태를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권법 중에 '사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뱀의 모습을 띈 권법입니다.
그 모습은 흡사 뱀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혀 - 뱀의 혀로 대응시켜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뱀의 형태로 재창조한 것입니다.
그것은 뱀의 모습을 띄었지만 뱀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뱀의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그것은 기존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갖지도 않습니다.
발레의 예를 들어보면
<백조의 호수>에서 무용수들은 '백조-되기'를 시도합니다.

그들의 모습은 백조의 모습과 유비적으로 닮지 않았음에도
(사람의 손이 백조의 손이 아니고, 백조의 얼굴이 사람의 얼굴과 대응되지 않듯이)
그들은 백조-되기를 통하여 백조의 모습을 재창조해 낸 것입니다.
그것은 기존의 백조의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백조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A라는 무용수의 '백조-되기'는 B라는 힙합뮤지션이 만들어 내는 '백조-되기'와는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뱀-되기', '백조-되기'를 이해한다면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여성-되기', '흑인-되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단순히 여성이 되고, 흑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여성의 감응을 만들어 내고 흑인의 감응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되고, 흑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는 여성이나 흑인들과 같은 감응을 몸으로 느끼고 그것을 그려낼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의 '여성-되기'이자 '흑인-되기'의 모습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존의 고정되어 있는 것들을 단순하게 배열함으로서 '되기'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백조 안에 있는 것, 뱀 안에 있는 것, 여성 안에 있는 것, 흑인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나름대로 자신의 몸짓이라든지, 언어라든지, 어떠한 모습으로 창조해 낸다면
바로 '백조-되기', '뱀-되기', '여성-되기', '흑인-되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해서
어느 한 여성의 '남성-되기'도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어떤 여성이 기존의 남성적 이미지로 대표되는 마초성, 권위성등을 스스로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마초 남성의 모습을 보고 그의 모습처럼 '되고자' 한다면
이미 그 여성은 '남성-되기'에 다다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흑인이 되었다고 해서 '흑인-되기'가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흑인이지만 백인의 습속을 그대로 가지려고, 또는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를 흑인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백인-되기'에 다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흑인 역시 '흑인-되기'를 통해서 흑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다른 곳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박근혜라는 정치인을 보면서
그가 여성을 대표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에게서는 이미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지우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행해졌고,
그는 여타 남성 정치인들 속의 인물, 즉 '남성-되기'에 다다른 인물인 것입니다.
'되기'라는 말이 이제 좀 이해가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되기'는 단순히 유비적인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 폐 = 금붕어 : 아가미' 의 유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되기'는 소수자적인 것에서만이 창조의 의미를 갖습니다.
'남성-되기'는 이미 기존의 틀 안에 자신을 끼워맞추려는 행위로 새로움을 창조해 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남성/여성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남성이 여성보다 위에 서있는 세계에 더 다가서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여성-되기'는
남성/여성의 이분법적인 세계에서, 남성 아니면 여성인 세계에서
그 이분법적인 세계의 틈새를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인 것이며
남성의 '여성-되기'는 기존의 남성의 모습도 아니며 기존의 여성의 모습도 아닌
새로운 양태를 만드는 행위인 것입니다.
다른 예로 '백조-되기'에서 무용수는 기존의 인간의 모습도 아니며, 기존의 백조의 모습도 아닌
새로운 백조를 만들어 내듯이 말입니다.
'흑인-되기'에서는
기존의 흑인의 이미지도 아닌, 기존의 백인의 이미지도 아닌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흑인의 권익을 위해서 싸우는 백인을 보며
그가 기존의 백인들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그를 피부색이 검은 흑인의 모습을 띄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모습이며 하나의 '흑인-되기'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되기'가 창조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는 그것이 소수자적일 경우에 해당됩니다.
기존의 '인간-되기'에 대항하는 '동물-되기'가 있을 수 있을 것이며,
기존의 '남성-되기'에 대항하는 '여성-되기'가 있을 수 있을 것이며,
기존의 '백인-되기'에 대항하는 '흑인-되기'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되기는 단순히 남성/여성, 인간/동물, 백인/흑인이라는 이분법적인 요소를 넘어
그 안의 틈새에서 새로운 모습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이러한 이분법적인 세계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다시 예를 들어서
어느 한 남성의 '여성-되기'는 그것이 기존의 남성의 모습도 아닌, 그렇다고 여성의 모습도 아닌
남성/여성의 세계관의 틈새를 만들어 가는 것이며
더이상 남성/여성의 구별이 필요없어지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남성, 아니면 여성이었지만
'되기'를 통하여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발레에서의 백조의 모습은 백조와 사람에 수렴되지 않는 하나의 위치를 가지듯이 말입니다.
'되기'라는 개념이 사실 잘 다가오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에
많은 예시를 통해서 설명하고자 하였는데 그것이 이 글을 통해서 잘 설명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제가 '들뢰즈'의 글을 보고 제 자신이 제 안에서 변용하여 만들어 낸 글이기에
저의 '들뢰즈-되기'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되기'와 관련하여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겠지만
저의 바람은 이 글을 보고 '되기'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소 두서없는 글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으나
아직 제 자신 안에서 이해되어도 글로서 내보내기에 부족한 면이 있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에게 질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저의 '들뢰즈-되기'는 되기의 초기문턱에 머물러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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